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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JIP/네이버캐스트

고무

거리에 나서면 자동차가 넘쳐 흐른다.  고무 타이어가 없는 자동차는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만약에 서부 영화에 나오는 마차 바퀴처럼 나무 혹은 쇠로 만든 바퀴를 장착한 자동차가 도로를 굴러 다닌다면?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는 고무를 전적으로 자연에 의지하지 않고 공장에서 만들어 내기 시작한 지 거의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나라에 고무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 값싼 고무 지우개로 글씨를 지우다가 글씨는 지워지지 않고 공책을 찢어버려 속상했던 기억과 비 내리는 날 고무장화를 신고 진흙 길을 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걷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이처럼 고무는 현재 인류의 문명을 떠 받치고 있는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일 것이다.

 


고무는 여러 개의 이소프렌이 결합한 탄력성 고분자 물질

고무는 탄력성 고분자(elastomer)의 일종이다.  고무는 적절한 힘을 주어 잡아 늘리면 늘어나고, 힘을 멈추면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특성이 있다.  이중결합이 2개 있는 이소프렌(isoprene, IUPAC에서 부르는 공식 이름은 2-methyl-1,3-butadiene : C5H8) 분자를 수없이 연결하여 고분자로 만들면 고무가 된다.  고무가 탄화수소(hydrocarbon)인 이소프렌 단량체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힌 과학자는 전기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패러데이(M. Faraday, 1791~1867)였다.  탄화수소란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유기 화합물이다.  벤젠고리가 포함되는 방향족 탄화수소도 있고, 쇠사슬처럼 탄소원자가 길게 연결되어 있는 지방족 탄화수소도 있다.  탄화수소에 포함된 탄소와 탄소결합이 단일결합이면 알칸(alkane), 이중결합이면 알켄(alkene), 삼중 결합이면 알킨(alkyne)이라 부른다. 

  

트랜스형 이소프렌(중합체)(좌), 시스형 이소프렌(중합체)(중), 이소프렌(단랑체)(우).

  

이소프렌은 모두 5개의 탄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단량체 양 끝에 위치한 이중 결합을 구성하는 탄소(1, 4번)는 다른 단량체의 이중결합 말단 탄소와 새로운 결합을 형성한다.  그 결과 중간 탄소(2, 3번)에 새로운 이중결합이 형성되면서 길게 연결이 된다.  메틸기(CH3-)와 수소(-H)가 이중 결합을 중심으로 같은 방향으로 결합이 이루어지면 시스 결합 고분자가 형성되며, 메틸기와 수소가 서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형태로 결합이 이루어지면 트랜스 결합 고분자가 형성된다.

 

 

천연 고무는 고무 나무에서 얻는다

많은 천연 고무는 파라 고무나무 수액을 처리하여 얻는다.  천연고무 결합 특성을 분석한 결과 이소프렌이 시스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시스 결합을 한 고무의 탄성이 트랜스 결합을 한 고무의 탄성보다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자연에서 얻는 고무 중에는 이소프렌이 모두 트랜스 결합으로 이루어진 고무도 있으며, 이것을 구타페르카(gutta-percha)라고 부른다.  구타페르카는 파라 고무나무와는 다른 종류의 고무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다.  구타페르카는 탄성이 약하지만 전기 절연 효과가 커서 바다에 잠기는 전선의 피막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기계적 강도 또한 좋아서 한 때는 골프공에 사용되기도 했었다.  시스 결합 고분자와 트랜스 결합 고분자가 뒤섞어 있는 자연산 고무도 있다. 

 

고무 나무에서 수액을 추출하여 고무를 얻는다(왼쪽). 껌은 풍선을 불 수 있을 만큼 탄성이 좋다(오른쪽).

 

껌 회사의 광고(‘멕시코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에 나오는 치클은 시스와 트랜스 결합이 마구 잡이로 뒤섞여 있는 고무이다.  껌은 이런 고무에 단맛을 내는 물질, 향내 나는 물질, 이를 보호한다는 기능성 물질을 추가해서 만든 것이다.  껌의 원료로 사용되는 고무는 석유회사에서 원유를 추출해서 만든 합성고무가 더 좋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산과는 달리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결합을 하느냐에 따라 분자의 운명(?)과 대접이 달라진다. 요즈음 많이도 듣는 용어인 ‘트랜스 지방’은 시스 지방과 구조가 다르며, 그 결과 물리적 화학적 특성이 달라져 푸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 자연산 지방의 대부분은 시스 결합을 가진 지방들이다.

 

 

고무의 특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가황 공정을 발견한 굿이어

고무에 열을 가하면서 황을 첨가하는 과정을 가황(vulcanization)이라고 하며, 영어 어원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벌칸(Vul can)에서 따온 것이다. 천연고무는 열을 가하면 탄성을 잃고 끈적끈적 해진다.  이러한 고무의 특성을 획기적으로 바꾼 이가 굿이어(Charles Goodyear, 1800~1860)이다.  일설에 의하면 고무에 대한 연구에 골몰하던 어느 날, 우연히도 천연 고무덩어리와 황을 혼합한 물질을 뜨거운 난로 위에 떨어뜨리게 되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고무는 천연고무와는 달리 악 조건에서도 탄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라고 후세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위대한 발견은 많은 숨은 노력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 특별히 황을 넣었을까? 굿이어는 아마도 높은 온도에서 고무의 끈적끈적한 성질을 개선하려고 수많은 종류의 분말을 섞어서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고, 우연한 기회에 황과 고무의 혼합물을 난로에 실수로(?) 떨어뜨린 것이 대단한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도 어릴 때 찰흙의 점성도를 변화시키려 흙 혹은 돌 가루를 섞어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굿이어 타이어

 

굿이어는 굉장한 발명을 했지만 왜 황이 첨가되면 고무의 특성이 변하는 지를 알지는 못한 것 같다. 후에 밝혀진 사실은 고무가 가황 과정을 거치고 나면 길다란 이소프렌 고분자들이 이황화 결합으로 서로 교차결합(crosslink)을 하여 고분자의 성질이 변한다는 것이었다.  이황화 결합이 없는 천연고무는 길다란 고분자들이 서로 뒤엉켜 뭉쳐진(?) 상태로, 열을 가하면 고분자들이 각자 가닥으로 풀어지면서 끈적해지고, 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황화 결합은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단백질, 케라틴(keratin)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용실에서 파머를 하는 것은 이황화 결합을 끊었다 다시 붙이는 일, 즉 화학실험을 하는 것이다. 굿이어는 발명을 통해 특허를 획득했지만 돈도 벌지 못하고 심지어 빚만 잔뜩 걸머진 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자동차용 타이어 회사(Goodyear Tire & Rubber Compa

ny)의 회사명이 그의 이름을 따다 만든 것으로 일부는 보상을 받은 듯싶다.

 

 

세계대전을 계기로 발전한 합성고무

다양한 크기의 고무 오링(O ring)
<출처: Yoruno at en. wikipedia.com>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필요한 고무의 수요를 모두 자연산으로 충당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자연산을 대체할 수 있는 합성고무를 생산할 수 밖에 없었고, 합성고무가 탄생한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다.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합성고무의 종류와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전쟁 물자인 자연산 고무를 자유롭게 구할 수 있는 길이 막히자 새로운 합성고무의 연구와 생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처럼….” 특히 독일은 천연고무의 생산지가 연합군에 의해 봉쇄되어, 군수용 고무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천연고무의 대체 물질을 찾는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를 시작한 과학자들은 아마도 천연고무에 포함된 이소프렌 혹은 이소프렌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 단량체를 결합시켜서 고분자를 만들면 고무의 특성을 지닌 물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험을 시작했을 것이다.  최초의 합성고무 역시 이소프렌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합성고무의 특성을 분석하고 물성을 이해한 다음에는 다양한 종류의 합성고무를 만들 수 있었다. 이소프렌의 메틸기(CH3-) 위치에 염소 원자가 치환된 클로로프렌(chloroprene) 단량체로 합성한 고분자로부터 네오프렌(neoprene)이 만들어졌다.  가황 공정에서 황의 비율, 온도, 기타 첨가제를 조절하여 다양한 용도를 충족할 수 있는 합성고무를 만들 수 있었다.  네오프렌은 열에 강하고 유기 용매에 잘 녹지 않아서 자동차의 벨트, 연료의 고무호스, 가스킷, 고무 오링 등에 사용된다.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1986년 1월)도 고무 오링 때문이었다.  TV로 그 폭발 광경을 지켜본 필자는 후에 사고 원인이 고무 오링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었다.  고무가 추운 겨울 날씨에 탄성을 잃고 굳어지면서 연료가 새어 나와 결국 폭발로 이어졌다니….

 

 

대한민국 기업이 합성고무 생산 1위에 올라

현재 널리 애용되는 합성고무는 스타이렌(styrene)과 부타다이엔(butadiene)의 공중합 고분자(copolymer)인 스타이렌- 부타다이엔 고무(SBR, styrene-butadiene rubber)이다.  오늘날에는 화학산업의 발달로 인해서 이중 결합이 포함된 단량체(스타이렌, 에틸렌, 부타다이엔, 프로필렌 등)를 적절히 공중합하여 다양한 특성의 합성고무를 생산해 내고 있다.  자동차용 타이어는 주로 스타이렌- 부타다이엔 고무(SBR)를 기본으로 부타다이엔 고분자(BR), 흑연 혹은 실리카 등을 첨가한 합성고무로 만든다.  자동차의 종류에 따라서는 천연고무로 만든 타이어를 장착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금호석유화학에서 생산하는 합성고무(SBR + BR)의 생산량은 굿이어의 생산량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고무 축구공만 있었더라면…

어릴 적에 제대로 된 공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볏짚으로 만든 새끼줄을 둘둘 말아 짚공(?)을 사용하여 축구를 한 적도 있었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은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은 공으로 축구를 하기도 했다. 

 

방광으로 만든 공은 짚으로 만든 공보다는 탄력도 좋고, 공을 차서 발에 닿은 느낌도 훨씬 좋았다.  짚공이나 방광 공이나 완전한 구 모양의 공이 아니므로 축구 실력과는 무관하게 승부가 나기도 했다.  그저 고무로 만든 공하나만 있었어도 승부는 달라졌을 텐데…….


 

어릴 때는 축구공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발행일  
2009.10.21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cor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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