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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JIP/네이버캐스트

알레르기와 기생충


알레르기성 비염은 괴로운 병이다. 들이마시는 공기 중 코 점막에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되었을 때 발병하며, 코감기 증상이 나타난다. 투명한 콧물이 수시로, 밑도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수시로 재채기를 하며, 코와 눈이 가렵다. 코감기가 일주일 정도 있으면 회복되는 데 비해 알레르기성 비염은 언제 회복될지 기약이 없으니 심난하다. 할 수 없이 주머니 속에 여행용 티슈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콧물을 닦아야 하는데, 데이트라도 할 때 콧물을 닦고 있자면 정말이지 죽고 싶다. 감기는 겨울에만 조심하면 되지만, 이 질환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괴롭히며, 심지어 일년 내내 이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늘어간다

아토피성 피부염


과거에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그리 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비염 환자가 많아졌다. 알레르기성 비염, 아토피성 피부염, 그리고 천식을 '알레르기성 질환'이라 부르는데, 좀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이 질환들의 빈도가 크게 늘었다. 

 

2002년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30년 동안 소위 선진국에서는 아토피성 피부염이 2-3배 가량 증가해, 어린애들의 15-20%가 이걸로 고생한단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얼굴 곳곳이 벌개진 아이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대체 알레르기 질환은 왜 점점 늘어나는 걸까?

 

 

잘 사는 나라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이 늘고 있다

이걸 설명하기 위한 게 바로 '위생가설'이다.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는 잘사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장에 사는 병원균에 덜 노출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몇몇의 과학자(H.H. Smits 등)는 특히 기생충 감염이 알레르기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기생충이 많은 나라들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이 드물다. 미국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 임상기생충학 책임자였던 에릭 오티슨(Eric Ottesen)은 남태평양 산호섬인 마우케(Mauke)의 주민들을 조사했는데, 1973년에는 주민 600명 중 3%만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었던 반면 1992년에는 그 비율이 15%로 증가한 것을 관찰했다. 그 기간 동안 오티슨은 기생충 박멸을 위한 각종 의료 시설을 건립해 치료에 힘썼고, 그 결과 30%가 넘던 기생충 감염률이 5% 이하로 떨어졌단다. 기생충과 알레르기, 이들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알레르기는 항체가 우리 몸을 공격하는 병

알레르기는 항체의 한 종류인 면역글로불린 E가 점막조직에 주로 분포하는 비만세포(mast cell)와 결합함으로써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을 말한다. 비만세포에는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 물질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기관지를 수축시켜 알레르기 증상이 일어나게 한다.

 

항체 하면 병원균을 공격하여 물리치는 이로운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항체가 잘못 작용하면 우리 몸에 해로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항체가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을 자가면역이라고 하고, 이런 증상으로 일어나는 병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한다.


비만세포의 현미경 사진

  

 

기생충에 걸리면 알레르기가 준다

알레르기 환자들은 면역글로불린 E 항체가 높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기생충 감염시에도 알레르기 때와 비슷하게 혈중 면역글로불린 E 생산이 증가된다. 하지만 이 면역글로불린 E는 알레르기 때의 면역글로불린 E와는 달라서 비만세포에 달라붙어도 히스타민이 분비되지 않는다. 만일 기생충에 의해 만들어진 면역글로불린 E가 비만세포에 다 달라붙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면역글로불린 E가 붙을 자리가 없어짐으로써 알레르기 증상이 억제되게 된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밥솥 안에 상한 밥이 있다. 그 밥을 먹으면 100% 탈이 난다. 그래도 배고픈 것보다는 배아픈 게 낫다고 생각해 밥을 먹으려 하는데, 기생충들이 밥솥 주위를 철통같이 지키고 앉아 우리는 못 먹게 하고 자기네만 먹어버려 우리가 식중독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다른 주장도 있다. 기생충에 대한 항체를 만드느라 우리 조직을 공격하는 항체를 덜 만들게 된다는 것. 이건 기생충과 우리가 상한 밥을 나눠먹어서 식중독 증상을 덜 일으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요즘에는 사이토카인(cytokine)을 가지고 이 관계를 설명한다. 사이토카인은 세포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인데, 인터류킨(interleukin)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IL이라고 표기한다. 발견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는데, 기생충에 감염되면 그 사이토카인 중 하나인 IL-10이 분비된다. IL-10은 전반적으로 인체의 면역 반응을 억제시킨다. 그래서 우리 몸이 알레르기 항원에 덜 반응할 수 있고, 증상도 완화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한 밥을 몇 숟갈 떴을 무렵, "그 밥 먹지 마!"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만손주혈흡충(Schistosoma mansoni)이라는 기생충에 걸린 사람은 IL-10의 혈중 농도가 아주 높은 대신 피부가 알레르기 항원에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근데 이 기생충을 약으로 치료했더니 IL-10 생산이 감소되고, 알레르기 항원에 대한 반응이 증가되었다고 하니, IL-10이 상한 밥을 먹지 말라는 신호인 셈이다. 이밖에 기생충이 자기가 더 잘 살기 위해 숙주 면역을 전반적으로 감소시켰다는 설-이건 기생충이 평소의 징그러운 모습을 동원해 우리의 식욕을 줄인 것에 비유할 수 있다-도 있는데, 이유야 어떻든 현재 알레르기 질환과 기생충 감염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기생충과 알레르기를 넣고 검색을 해보면 무려 2,000편의 논문이 나올 정도이다.

 

 

기생충 단백질로 알레르기를 고치는 연구가 활발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알레르기를 없애기 위해 억지로 기생충에 걸려야 하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쿄대학의 후지타 고이치로 교수는 자신의 장 속에서 촌충을 3년이나 길렀다고 한다. 그는 어시장에서 불결한 생선을 골라먹고 겨우 촌충에 감염됐다고 한다. 알레르기 질환도 완화시킬 수 있고 살도 뺄 수 있는 방법이긴 해도 이런 걸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엽기적인 거 말고 좀 더 건전한 방법은 없을까? 있다. 기생충을 먹는 대신 기생충의 추출물을 주사하는 거다. 기생충을 접시에 담아 따뜻한 곳에 놔두면 기생충이 몸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배출하는데, 이걸 기생충의 분비‧배설 항원이라고 부른다. 이건 그냥 단백질이라, 정제만 잘 한다면 몸 안에 투여해도 별 문제는 없다.


촌충의 몸 일부(좌)와 촌충의 머리부분(우)

 

한 연구자는 쥐모양선충이라는 기생충의 단백질을 실험 쥐에 투여한 후 천식을 일으키는 물질을 주는 실험을 해 보았다. 일반 쥐가 천식 증상을 보인 것과는 달리, 기생충의 단백질을 투여한 쥐는 천식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생충과 알레르기를 연구하는 부산대 유학선 교수팀도 사자 회충의 단백질을 이용해 천식반응을 억제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그래, 바로 이거다. 기생충을 몸에 키우라고 하면 싫어할 사람이 있어도, 단백질쯤이야

 

 

자가 면역 질환 치료에는 기생충이 희망이다

무서운 얘기와 희망적인 얘기를 하나씩 해본다. 알레르기 질환이 항원에 대해 생긴 항체가 자기를 공격하는 질환인 것처럼, 다발성 경화증이나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도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한다고 추측된다. 모두 자가면역질환인 셈이다. 항체가 중추신경계를 공격해 감각이상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게 다발성 경화증이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세포를 항체가 공격함으로써 생기는 질환이 바로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이다. 기생충의 감소와 더불어 이런 질환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는 게 바로 무서운 소식이다. 그럼 희망적인 얘기는? 요충을 가지고 실험 쥐를 이용해서 실험을 해봤더니, 실험 쥐에서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의 발생을 감소시켰단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기생충이 희망이다. 최소한 먼 훗날에는.

 

관련글 :  돼지 회충, 사람 회충  

 

  

 

 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다. 저서로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발행일  200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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